화엄경 제 6. 진리가 현전하는 보살의 자리(現前地)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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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06-23 21:58 조회 8 댓글 0본문
제 6. 진리가 현전하는 보살의 자리(現前地)
불자여,
무명에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중생으로 하여금 관계所緣를 미혹하게 함이요,
둘은 행이 생겨나는 인因이 된다.
행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미래의 과보를 내는 것이요,
둘은 식識이 생겨나는 인이 된다.
식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여러 유有를 서로 지속하게 함이요,
둘은 명색이 생겨나는 인이 된다.
명색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서로 도와서 이루게 함이요,
둘은 육처가 생겨나는 인이 된다.
육처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저마다 제 경계를 취함이요,
둘은 촉이 생겨나는 인이 된다.
촉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관계를 접촉함이요,
둘은 수가 생겨나는 인이 된다.
받아들임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사랑스런 일과 미운 일을 받아들임이요,
둘은 사랑이 생겨나는 인이 된다.
사랑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사랑스런 일에 물듦이요,
둘은 취가 생겨나는 인이 된다.
취에도 두가지 업이 있으니,
온갖 번뇌를 서로 지속케 함이요,
둘은 유가 생겨나는 인이 된다.
유에도 두 가지 업이 잇으니,
하나는 다른 세상에 태어나게 함이요,
둘은 생生의 인이 된다.
생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여러 온蘊을 일으킴이요,
둘은 늙음의 인이 된다.
늙음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여러 근根이 변화하게 함이요,
둘은 죽음이 오게 하는 인이 된다.
죽음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모든 행을 파괴함이요,
둘은 알아차리지 못하므로
서로 지속하면서 끊어지지 않는다.
이 가운데서 무명은 행의 연緣이 되고,
이와 같이 생은 늙음과 죽음의 연이 된다는 것은,
무명이나 생이 연이 되어
행이나 늙음과 죽음으로 하여금
끊어지지 않게 하고 도와서 이루게 하기 때문이다.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이와 같이 생이 멸하면
늙음과 죽음이 멸한다는 것은,
무명이나 생이 연이 되지 않아
행이나 늙음과 죽음으로 하여금
끊어 없어져서 도와서 이루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서 무명과 사랑과 취함이
끊어지지 않는 것은 번뇌의 길이요,
행과 유가 끊어지지 않는 것은 업의 길이요,
다른 것이 끊어지지 않는 것은 고통의 길이다.
앞의 것이니 뒤의 것이니 하는 분별이 사라지면 세 길이 끊어진다.
이 같은 세 길은 나와 내 것을 떠나
생멸이 있는 것이 마치 묶어 세워둔 갈대단 같다.
불자여,
보살 마하살이 이와 같이 연기를 관하여
나도 없고
사람도 없고
수명도 없고
제 성품이 공하고
짓는 이가 없고
받는 이가 없음을 알면 ,
곧 공한 해탈문 空解脫門이 앞에 나타나게 된다.
모든 인연이 다 제 성품이 멸함을 관하여
끝까지 해탈하여
조그만 법도 서로 내는 것이 없으면,
곧 모양없는 해탈문이 앞에 나타나게 된다.
이와 같이 공하고 모양없는 데 들어가 원하는 것이 없다.
오로지 대비大悲가 으뜸이 되어
중생을 교화할 뿐이니,
곧 원이 없는 해탈문이 앞에 나타나게 된다.
보살이 이와 같이 세 해탈문을 닦으면,
남이니 내니 하는 생각을 여의게 되고,
짓는 이니 혹은 받는 이니 하는 생각을 여의게 되며,
있고 없음의 생각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이 보살 마하살은 대비가 점점 더하여 부지런히 닦나니,
아직 모자란 보리분법을 가득 채우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와 같이 생각한다.
" 모든 변화 생멸하는 것이 화합하면 생겨나고,
화합하지 않으면 생기지 못하며,
연이 모이면 생겨나고 연이 모이지 않으면 생기지 못한다.
변화 생멸하는 것이 이처럼 허물이 많은 줄을 알았으니
마땅히 이 화합하는 인연을 끊어야 한다.
그러나 중생들을 성취케 하기 위해
끝까지 여러 행을 멸하지 않으리라."
불자여,
보살이 이와 같이 변화 생멸하는 것이 허물이 많고
제 성품이 없어서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음을 관찰하고,
항상 대비심을 일으켜 중생을 버리지 않으면
곧 반야 바라밀이 앞에 나타난다.
그 이름은 장애가 없는 지혜의 광명이다.
이 같은 지혜의 광명을 성취하고는
비록 보리분의 인연을 닦더라도
변화 생멸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변화 생멸하는 법의 성품이 적멸함을 관하더라도
적멸한 가운데 머물지 않나니,
그것은 보리분법이 아직 원만하지 못한 때문이다.
보살이 이 현전지에 머물러
다시 깨뜨릴 수 없는 마음과,
결정된 마음,
순수하게 선한 마음,
심히 깊은 마음,
물러나지 않는 마음,
쉬지 않는 마음,
넓고큰 마음,
그지없는 마음,
지혜를 구하는 마음,
방편 지혜와 서로 응하는 마음이
모두 가득 차게 된다.
보살이 이 열가지 마음으로 부처님의 보리를 따르고
이론異論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지혜의 자리에 들어가
이승二乘을 여의고 부처님 지혜에 나아간다.
여러 번뇌의 악마가 방해하지 못하고,
보살의 지혜 광명에 머물며,
공空.무상無相. 무원無願의 법 가운데서 잘 닦아 익히며,
방편의 지혜와 서로 응하며,
보리의 부분법을 항상 행하고 버리지 않는다.
보살이 이 현전지에 머물러
반야 바라밀다행이 늘어나고
제 3의 밝고 이로운 수순인을 얻는다.
이는 모든 법의 실상과 같은 것을 따르고 어기지 않기 때문이다.
보살이 이 현전지에 머무를 때
서원의 힘으로 수 많은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데,
모두 광대한 마음과 깊은 마음으로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한다.
의복과 음식과 침구와 약과
온갖 소용되는 물건을 이바지하며,
스님들에게도 공양한다.
이 선근으로 최상의 깨닫음에 회향하며,
여러 부처님 처소에서 공경히 법을 듣고 받아 지닌다.
실상과 같은 삼매와 지혜 광명을 얻고,
따라 수행하여 기억하고 버리지 않는다.
또 부처님의 아주 깊은 법장法藏을 얻어
백천 겁을 지날지라도 지닌 선근은 점점 더 밝고 청정해진다.
마치 순금을 비유리毘琉璃로 자주 갈고 닦으면 더욱 발고 맑아지듯이,
이 자리에 있는 보살의 선근도 그와 같아서
방편과 지혜로 따르고 관찰하므로
더욱 밝고 맑아지고 다시 적멸하여져 그 무엇으로도 가리울 수가 없다.
이 보살은 십바라밀 중에 반야 바라밀이 치우쳐 많은데,
다른 것을 닦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힘을 따르고 분수를 따를 뿐이다.
불자여, 이것이 보살 마하살의 제 6 현전지를 간략히 말한 것이다."
불자여,
무명에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중생으로 하여금 관계所緣를 미혹하게 함이요,
둘은 행이 생겨나는 인因이 된다.
행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미래의 과보를 내는 것이요,
둘은 식識이 생겨나는 인이 된다.
식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여러 유有를 서로 지속하게 함이요,
둘은 명색이 생겨나는 인이 된다.
명색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서로 도와서 이루게 함이요,
둘은 육처가 생겨나는 인이 된다.
육처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저마다 제 경계를 취함이요,
둘은 촉이 생겨나는 인이 된다.
촉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관계를 접촉함이요,
둘은 수가 생겨나는 인이 된다.
받아들임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사랑스런 일과 미운 일을 받아들임이요,
둘은 사랑이 생겨나는 인이 된다.
사랑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사랑스런 일에 물듦이요,
둘은 취가 생겨나는 인이 된다.
취에도 두가지 업이 있으니,
온갖 번뇌를 서로 지속케 함이요,
둘은 유가 생겨나는 인이 된다.
유에도 두 가지 업이 잇으니,
하나는 다른 세상에 태어나게 함이요,
둘은 생生의 인이 된다.
생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여러 온蘊을 일으킴이요,
둘은 늙음의 인이 된다.
늙음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여러 근根이 변화하게 함이요,
둘은 죽음이 오게 하는 인이 된다.
죽음에도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모든 행을 파괴함이요,
둘은 알아차리지 못하므로
서로 지속하면서 끊어지지 않는다.
이 가운데서 무명은 행의 연緣이 되고,
이와 같이 생은 늙음과 죽음의 연이 된다는 것은,
무명이나 생이 연이 되어
행이나 늙음과 죽음으로 하여금
끊어지지 않게 하고 도와서 이루게 하기 때문이다.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이와 같이 생이 멸하면
늙음과 죽음이 멸한다는 것은,
무명이나 생이 연이 되지 않아
행이나 늙음과 죽음으로 하여금
끊어 없어져서 도와서 이루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서 무명과 사랑과 취함이
끊어지지 않는 것은 번뇌의 길이요,
행과 유가 끊어지지 않는 것은 업의 길이요,
다른 것이 끊어지지 않는 것은 고통의 길이다.
앞의 것이니 뒤의 것이니 하는 분별이 사라지면 세 길이 끊어진다.
이 같은 세 길은 나와 내 것을 떠나
생멸이 있는 것이 마치 묶어 세워둔 갈대단 같다.
불자여,
보살 마하살이 이와 같이 연기를 관하여
나도 없고
사람도 없고
수명도 없고
제 성품이 공하고
짓는 이가 없고
받는 이가 없음을 알면 ,
곧 공한 해탈문 空解脫門이 앞에 나타나게 된다.
모든 인연이 다 제 성품이 멸함을 관하여
끝까지 해탈하여
조그만 법도 서로 내는 것이 없으면,
곧 모양없는 해탈문이 앞에 나타나게 된다.
이와 같이 공하고 모양없는 데 들어가 원하는 것이 없다.
오로지 대비大悲가 으뜸이 되어
중생을 교화할 뿐이니,
곧 원이 없는 해탈문이 앞에 나타나게 된다.
보살이 이와 같이 세 해탈문을 닦으면,
남이니 내니 하는 생각을 여의게 되고,
짓는 이니 혹은 받는 이니 하는 생각을 여의게 되며,
있고 없음의 생각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이 보살 마하살은 대비가 점점 더하여 부지런히 닦나니,
아직 모자란 보리분법을 가득 채우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와 같이 생각한다.
" 모든 변화 생멸하는 것이 화합하면 생겨나고,
화합하지 않으면 생기지 못하며,
연이 모이면 생겨나고 연이 모이지 않으면 생기지 못한다.
변화 생멸하는 것이 이처럼 허물이 많은 줄을 알았으니
마땅히 이 화합하는 인연을 끊어야 한다.
그러나 중생들을 성취케 하기 위해
끝까지 여러 행을 멸하지 않으리라."
불자여,
보살이 이와 같이 변화 생멸하는 것이 허물이 많고
제 성품이 없어서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음을 관찰하고,
항상 대비심을 일으켜 중생을 버리지 않으면
곧 반야 바라밀이 앞에 나타난다.
그 이름은 장애가 없는 지혜의 광명이다.
이 같은 지혜의 광명을 성취하고는
비록 보리분의 인연을 닦더라도
변화 생멸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변화 생멸하는 법의 성품이 적멸함을 관하더라도
적멸한 가운데 머물지 않나니,
그것은 보리분법이 아직 원만하지 못한 때문이다.
보살이 이 현전지에 머물러
다시 깨뜨릴 수 없는 마음과,
결정된 마음,
순수하게 선한 마음,
심히 깊은 마음,
물러나지 않는 마음,
쉬지 않는 마음,
넓고큰 마음,
그지없는 마음,
지혜를 구하는 마음,
방편 지혜와 서로 응하는 마음이
모두 가득 차게 된다.
보살이 이 열가지 마음으로 부처님의 보리를 따르고
이론異論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지혜의 자리에 들어가
이승二乘을 여의고 부처님 지혜에 나아간다.
여러 번뇌의 악마가 방해하지 못하고,
보살의 지혜 광명에 머물며,
공空.무상無相. 무원無願의 법 가운데서 잘 닦아 익히며,
방편의 지혜와 서로 응하며,
보리의 부분법을 항상 행하고 버리지 않는다.
보살이 이 현전지에 머물러
반야 바라밀다행이 늘어나고
제 3의 밝고 이로운 수순인을 얻는다.
이는 모든 법의 실상과 같은 것을 따르고 어기지 않기 때문이다.
보살이 이 현전지에 머무를 때
서원의 힘으로 수 많은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데,
모두 광대한 마음과 깊은 마음으로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한다.
의복과 음식과 침구와 약과
온갖 소용되는 물건을 이바지하며,
스님들에게도 공양한다.
이 선근으로 최상의 깨닫음에 회향하며,
여러 부처님 처소에서 공경히 법을 듣고 받아 지닌다.
실상과 같은 삼매와 지혜 광명을 얻고,
따라 수행하여 기억하고 버리지 않는다.
또 부처님의 아주 깊은 법장法藏을 얻어
백천 겁을 지날지라도 지닌 선근은 점점 더 밝고 청정해진다.
마치 순금을 비유리毘琉璃로 자주 갈고 닦으면 더욱 발고 맑아지듯이,
이 자리에 있는 보살의 선근도 그와 같아서
방편과 지혜로 따르고 관찰하므로
더욱 밝고 맑아지고 다시 적멸하여져 그 무엇으로도 가리울 수가 없다.
이 보살은 십바라밀 중에 반야 바라밀이 치우쳐 많은데,
다른 것을 닦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힘을 따르고 분수를 따를 뿐이다.
불자여, 이것이 보살 마하살의 제 6 현전지를 간략히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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