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 이야기 충주철불좌상에 얽힌 이야기-대원사 충청북도 충주시 지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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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12-12 17:57 조회 390 댓글 0본문
충주 철불좌상은 충주시 성남동 마하사 앞뜰에 있던 것으로, 1770년(영조 46)에 지어진「약전원수기」를 보면, 633년 절을 창건한 후 높이 3척 2촌 5푼의 철조석가좌상을 조성하여, 염해평 서쪽(현재 충주공고와 성남초등학교 부근)에 봉안하고 그 뒤로 수 백년을 내려왔다고 한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그간 불상이 노천에 방치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여 누군가가 건물을 짓고 봉안하면 당우가 소실되거나 또는 향화(香火)로 공축하면 반드시 약병이 유행하므로 이 철불의 명칭을 광불(狂佛)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본래 완전했던 두손을 무뢰배가 훼손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922년에 옛 중원구청, 곧 지금의 관아공원 구내의 석가산으로 옮겼고, 다시 1937년 마하사로 옮겼다가 1959년에 지금의 대원사로 다시 옮겨져 봉안되었다.
위에서 나온 지명 중 염해평은'염밭'또는'염바다'라고도 하는데, 예로부터 현재 성남동 마하사 앞들에 철불이 서향해서 앉아 있었으므로 이 거리를 지금까지'광불거리'라고 한다.
곧 계족산(鷄足山) 아래의 어림리 앞과 금봉산(남산) 서쪽의 넓은 들을 말한다.
전설에 의하면 삼한시대부터 어림리에 고도(古都)가 있었다고 한다.
통일신라 때인 930년(경순왕 4)에 견휜(甄萱)이 이곳에 후백제의 도읍을 정하려 했는데, 지렁이의 후신인 견훤은 이 일대가 염바다라 하므로 질겁을 하고 전라남도 광주지역에 도읍을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위와 같은 기록 또는 전해 오는 전설을 근거 통해 염해평은 지금의 충주공고 북쪽의 들판으로, 이 곳에 철불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으므로 광불거리로 부른 것이다.
염해평에서 동쪽으로 약 700m 떨어진 곳에 대원고등학교가 위치해 있으며, 어림리는 대원고와 약 200m 떨어져 있다.
어림리는 이궁지(離宮地)ㆍ대궐터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곳에 절이 있었다고 하여 어림동 사지로 칭해지기도 하며, 전대궐터라 하기도 한다.
위의 내용은 1997년『예성춘추』와『중원향토기』(1997년)에 실려 있는 내용으로 이를 다시 정리 한 것이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그간 불상이 노천에 방치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여 누군가가 건물을 짓고 봉안하면 당우가 소실되거나 또는 향화(香火)로 공축하면 반드시 약병이 유행하므로 이 철불의 명칭을 광불(狂佛)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본래 완전했던 두손을 무뢰배가 훼손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922년에 옛 중원구청, 곧 지금의 관아공원 구내의 석가산으로 옮겼고, 다시 1937년 마하사로 옮겼다가 1959년에 지금의 대원사로 다시 옮겨져 봉안되었다.
위에서 나온 지명 중 염해평은'염밭'또는'염바다'라고도 하는데, 예로부터 현재 성남동 마하사 앞들에 철불이 서향해서 앉아 있었으므로 이 거리를 지금까지'광불거리'라고 한다.
곧 계족산(鷄足山) 아래의 어림리 앞과 금봉산(남산) 서쪽의 넓은 들을 말한다.
전설에 의하면 삼한시대부터 어림리에 고도(古都)가 있었다고 한다.
통일신라 때인 930년(경순왕 4)에 견휜(甄萱)이 이곳에 후백제의 도읍을 정하려 했는데, 지렁이의 후신인 견훤은 이 일대가 염바다라 하므로 질겁을 하고 전라남도 광주지역에 도읍을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위와 같은 기록 또는 전해 오는 전설을 근거 통해 염해평은 지금의 충주공고 북쪽의 들판으로, 이 곳에 철불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으므로 광불거리로 부른 것이다.
염해평에서 동쪽으로 약 700m 떨어진 곳에 대원고등학교가 위치해 있으며, 어림리는 대원고와 약 200m 떨어져 있다.
어림리는 이궁지(離宮地)ㆍ대궐터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곳에 절이 있었다고 하여 어림동 사지로 칭해지기도 하며, 전대궐터라 하기도 한다.
위의 내용은 1997년『예성춘추』와『중원향토기』(1997년)에 실려 있는 내용으로 이를 다시 정리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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