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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야기 |
육조의 불사선악(不思善惡)
작성자 최고관리자 23-12-14 22:27 조회 277회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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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思善惡(불사선악)
六祖因明上座趁至大庾嶺 祖見明至 卽擲衣鉢於石上云 此衣表信 可力爭耶 任君將去 明遂擧之 如山不動 踟躕悚慄 明曰 我來求法 非爲衣也 願行者開示 祖云 不思善 不思惡 正與麽時 那箇是明上座本來面目 明當下大悟 遍體汗流 泣淚作禮問曰 上來密語密意外 還更有意旨否 祖曰 我今爲汝說者, 卽非密也 汝若返照自己面目 密卻在汝邊 明云 某甲雖在黃梅隨衆 實未省自己面目 今蒙指授入處 如人飮水 冷自知 今行者卽是某甲師也 祖云 汝若如是 則吾與汝 師黃梅 善自護持
육조는 명상좌가 쫓아 대유령에 다가오자 명 상좌가 이른 것을 보고 의발을 바위 위에 던져 놓고 이르길 "이 의발은 믿음을 표한 것이니 애써 다툴 것이겠습니까 ? 마음대로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급기야 명 상좌가 그 것을 들으려 하였으나 산과 같이 굳건하여 움직이지 않았다. 당황하고 두려워하며 머뭇거리다가 명 상좌가 이르길 내가 쫓아와 구하는 것은 법이지 의발이 아닙니다. "원컨대 행자께서는 깨우쳐 주소서" 했다. 조사께서 이르길 "선도 생각지 말아야 하고 악도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정히 이럴 때 어떤 것이 이 명 상좌의 본래 면목이겠습니까 ?" 명 상좌가 그 자리에서 대오하였는데 온몸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명 상좌가 눈물을 흘리며 예를 갖추고 물어 가로되 "전부터 내려온 밀어 밀의 밖에 뜻이 또 있습니까 없습니까 ?" 조사가 가로되 "내 지금 상좌를 위하여 말씀 드린 것은 비밀한 것이 아닙니다. 상좌께서 만약 자기 면목을 반조한다면 밀어 밀의는 오히려 상좌의 주변(갓)에 있을 뿐입니다." 명 상좌가 이르되 "제가 비록 황매에서 대중을 따라 살았으나 실로 자기면목을 성찰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들어야 할 곳(입처)을 지도 받았는데 사람이 물을 마심에 차고 더움을 스스로 앎과 같게 되었습니다. 이제 행자께서는 이 사람의 스승이십니다. 조사께서 이르길 "상좌께서 그와 같다면 나와 더불어 황매에서 같이 사사한 것이 됩니다. 잘 호지하시기 바랍니다."
말해 보라. 선가의 그 뜻을 주고받음에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 뚜렷한 행법이 있었다. 그 때 명 상좌가 어찌 했으면 바위 위에 던져 놓은 의발이 시원스럽게 들릴 수 있었겠는가 ? 육조는 거리낌 없이 신표인 의발을 내어 주었는데 명 상좌는 무엇에 걸려서 의발을 받아들지 못했는가 ? 나 또한 계룡산 대자암에 있을 때 정영선사와 덕숭산 정혜사의 묵초선사로부터 혜능과 홍인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겪은 바 있고 법주사에 행자로 들어 은사스님인 천룡선사에게서 육조가 홍인선사의 회상에 참례하면서 겪었던 내밀한 일을 은밀히 겪었으나 내밀한 일이 있은 후의 행말은 같지 않았다. 나는 그러함을 겪었음에도 기특상에 떨어진 바가 없었다. 그대들이 참으로 높은 근기를 갖추었다면 명 상좌께서 발우를 들지 못한 이유에서 그 눈길을 뗄 길이 없을 것이다.
그 때 명 상좌가 정신을 가다듬어 의발을 구함이 아니라 법을 구함이라 함에 육조가 선도 생각지 말고 악도 생각지 말라 하였다. 육조의 법이 선악에 있지 않다면 어디에 있단 말인가 ? 그대들은 육조의 법이 있는 곳을 알겠는가 ? 그에 명상좌가 대오하여 들 곳을 알았으나 깨달은 법의 증명을 구하여 "밀의 밀어 밖에 뜻이 또 있습니까 ?" 하고 한 번 더 물었다. 육조가 답하여 자신이 일러 준 법은 절대로 비밀한 것이 아니라고 하며 자신의 본래 면목을 투철하게 반조한다면 밀의 밀어가 오히려 명 상좌의 변에 있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서도 안목을 드리우고자 한다면 무엇이 명상좌 밀의와 같은 변인가 하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대들의 본래 면목은 어떠한가 ? 선지식을 만나서 꿀 먹은 벙어리와 같아지는 초납(草衲)들이 깨달음을 구하여 이리 떠돌고 저리 떠돌고 있다. 참 된 선시직을 구하여 법을 제대로 물을 줄만 알아도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쉬울 터인데 어쩌다 법을 들어도 멍멍하기만 하다. 그러나 참구한답시고 남이 물은 것을 놓고 간절함이나 깊이도 없이 황망한 채 되묻고 되물으며 명채(命彩)를 제대로 챙기지도 못함이 허다하다. 안타깝고 또 안타까울 뿐이로다. 그 때의 참 뜻을 구하여 투철한 바가 있다면 이 일에서 명상좌와 육조 그 두 종장들의 허물과 장처를 남김없이 모두 볼 수 있을 것이다.
법을 제대로 참구하였다면
뜻이 자신의 손등을 봄과 같이 분명할 것이나
정진상과 청정상에 떨어져 스스로를 매각하였다면
칠흑보다 더 어두우리
훠이 ~ 훠이 ~ 훠이 ~
六祖因明上座趁至大庾嶺 祖見明至 卽擲衣鉢於石上云 此衣表信 可力爭耶 任君將去 明遂擧之 如山不動 踟躕悚慄 明曰 我來求法 非爲衣也 願行者開示 祖云 不思善 不思惡 正與麽時 那箇是明上座本來面目 明當下大悟 遍體汗流 泣淚作禮問曰 上來密語密意外 還更有意旨否 祖曰 我今爲汝說者, 卽非密也 汝若返照自己面目 密卻在汝邊 明云 某甲雖在黃梅隨衆 實未省自己面目 今蒙指授入處 如人飮水 冷自知 今行者卽是某甲師也 祖云 汝若如是 則吾與汝 師黃梅 善自護持
육조는 명상좌가 쫓아 대유령에 다가오자 명 상좌가 이른 것을 보고 의발을 바위 위에 던져 놓고 이르길 "이 의발은 믿음을 표한 것이니 애써 다툴 것이겠습니까 ? 마음대로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급기야 명 상좌가 그 것을 들으려 하였으나 산과 같이 굳건하여 움직이지 않았다. 당황하고 두려워하며 머뭇거리다가 명 상좌가 이르길 내가 쫓아와 구하는 것은 법이지 의발이 아닙니다. "원컨대 행자께서는 깨우쳐 주소서" 했다. 조사께서 이르길 "선도 생각지 말아야 하고 악도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정히 이럴 때 어떤 것이 이 명 상좌의 본래 면목이겠습니까 ?" 명 상좌가 그 자리에서 대오하였는데 온몸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명 상좌가 눈물을 흘리며 예를 갖추고 물어 가로되 "전부터 내려온 밀어 밀의 밖에 뜻이 또 있습니까 없습니까 ?" 조사가 가로되 "내 지금 상좌를 위하여 말씀 드린 것은 비밀한 것이 아닙니다. 상좌께서 만약 자기 면목을 반조한다면 밀어 밀의는 오히려 상좌의 주변(갓)에 있을 뿐입니다." 명 상좌가 이르되 "제가 비록 황매에서 대중을 따라 살았으나 실로 자기면목을 성찰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들어야 할 곳(입처)을 지도 받았는데 사람이 물을 마심에 차고 더움을 스스로 앎과 같게 되었습니다. 이제 행자께서는 이 사람의 스승이십니다. 조사께서 이르길 "상좌께서 그와 같다면 나와 더불어 황매에서 같이 사사한 것이 됩니다. 잘 호지하시기 바랍니다."
말해 보라. 선가의 그 뜻을 주고받음에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 뚜렷한 행법이 있었다. 그 때 명 상좌가 어찌 했으면 바위 위에 던져 놓은 의발이 시원스럽게 들릴 수 있었겠는가 ? 육조는 거리낌 없이 신표인 의발을 내어 주었는데 명 상좌는 무엇에 걸려서 의발을 받아들지 못했는가 ? 나 또한 계룡산 대자암에 있을 때 정영선사와 덕숭산 정혜사의 묵초선사로부터 혜능과 홍인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겪은 바 있고 법주사에 행자로 들어 은사스님인 천룡선사에게서 육조가 홍인선사의 회상에 참례하면서 겪었던 내밀한 일을 은밀히 겪었으나 내밀한 일이 있은 후의 행말은 같지 않았다. 나는 그러함을 겪었음에도 기특상에 떨어진 바가 없었다. 그대들이 참으로 높은 근기를 갖추었다면 명 상좌께서 발우를 들지 못한 이유에서 그 눈길을 뗄 길이 없을 것이다.
그 때 명 상좌가 정신을 가다듬어 의발을 구함이 아니라 법을 구함이라 함에 육조가 선도 생각지 말고 악도 생각지 말라 하였다. 육조의 법이 선악에 있지 않다면 어디에 있단 말인가 ? 그대들은 육조의 법이 있는 곳을 알겠는가 ? 그에 명상좌가 대오하여 들 곳을 알았으나 깨달은 법의 증명을 구하여 "밀의 밀어 밖에 뜻이 또 있습니까 ?" 하고 한 번 더 물었다. 육조가 답하여 자신이 일러 준 법은 절대로 비밀한 것이 아니라고 하며 자신의 본래 면목을 투철하게 반조한다면 밀의 밀어가 오히려 명 상좌의 변에 있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서도 안목을 드리우고자 한다면 무엇이 명상좌 밀의와 같은 변인가 하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대들의 본래 면목은 어떠한가 ? 선지식을 만나서 꿀 먹은 벙어리와 같아지는 초납(草衲)들이 깨달음을 구하여 이리 떠돌고 저리 떠돌고 있다. 참 된 선시직을 구하여 법을 제대로 물을 줄만 알아도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쉬울 터인데 어쩌다 법을 들어도 멍멍하기만 하다. 그러나 참구한답시고 남이 물은 것을 놓고 간절함이나 깊이도 없이 황망한 채 되묻고 되물으며 명채(命彩)를 제대로 챙기지도 못함이 허다하다. 안타깝고 또 안타까울 뿐이로다. 그 때의 참 뜻을 구하여 투철한 바가 있다면 이 일에서 명상좌와 육조 그 두 종장들의 허물과 장처를 남김없이 모두 볼 수 있을 것이다.
법을 제대로 참구하였다면
뜻이 자신의 손등을 봄과 같이 분명할 것이나
정진상과 청정상에 떨어져 스스로를 매각하였다면
칠흑보다 더 어두우리
훠이 ~ 훠이 ~ 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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